수능이 끝난 어느 겨울날이었던 것 같다.
거실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따뜻한 고구마를 먹으면서
김희선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빌려봤던 영화,
그게 내 기억 속 와니와 준하다.
김희선 나오는 영화가 다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끌림에 그녀의 영화를 봐버리는 나는
이번에도 '역시'라며 중얼거리며 테이프를 꺼내 반납했었다.
그땐,
영민이가 조승우였다는 사실도 몰랐고,
전혀 다른 경로로 푹 빠지게 되어버린
i wish you love가 이 영화 삽입곡인지도 전혀 몰랐었다.
약간의 시원한 기운이 내린 오늘, 한여름밤,
다시 한번 함께 한 영화 와니와 준하는,
지난 겨울에 봤던 와니와 준하의 여름보다 더 녹아들 수 있었다.
영화의 사랑을 이끌어 가는 두 축은 와니와 준하지만,
그 속에 스며드는 와니의 애틋한 첫사랑 영민의 이야기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첫사랑이 주는 느낌처럼,
쉽게 손에 쥐어지진 않지만,
기억 저편에 마냥 묻어버리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이야기-
조승우도,
i wish you love도,
비오는 여름날 밤도,
애틋한 첫사랑의 기억도,
자전거 타고 달리는 느낌도,
수동카메라와 그 속에 담긴 사진들도,
가로수가 맑은 하늘을 덮어버리는 길도,
모두 내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라
왜 그때 공감하며 보지 못했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멍하니 모니터를 한참동안 바라봤다
030806
F e i d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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