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하던대로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적군의 공연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꼭 맞게 들어맞는 내 자리에 앉아
그 시절의 이야기에, 노래에 공감하며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이고, 신나게 웃었다
황홀경의 기분은 적군의 몫으로 준비 된
그랜드 피아노와 키보드, 기타를 보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랜드 피아노라니!!! ㅠ_ㅠ
뭉툭한 키보드 소리보다, 다른 악기에 묻히기 쉬운 키보드 소리보다,
반짝반짝 날카롭게 빛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어했던
내 마음을 알아준거마냥 시작하기 전부터 행복해졌다
가끔, 공연장에 가면 내가 가수의 노래를 들으러 온건지
관객의 고함을 들으러 온건지 구분이 안갈때가 있어서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데,
내가 말한적 있나요로 시작된 적군의 이번 공연은
조용할 땐 숨소리도 안들릴만큼 적군에게 집중하고,
신나게 놀아야 할 땐 또 흥겹게 박수치고 노래부르고 소리질러서
정말 이게 바로 노래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연인가 싶어 너무나 행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역시
그녀를 잡아요와 강.
카니발 노래를 적군의 콘서트에서 듣게 될거라 상상 못했고
강은 내가 적군의 앨범들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기 때문.
그녀를 잡아요를 부를 땐 피아노 앞으로 자리를 옮겨서
경쾌하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줘서 더욱 더 신이났다
그동안 키보드를 쳤어도, 항상 관객쪽에서는 키보드만 보이고
건반을 누르는 모습은 안보이는, 그런 배치였어서 그게 참 아쉬웠는데
오늘은 내 자리에서 피아노를 움직이는 손가락이 너무나 잘 보여서
난 또 그에 마음을 한참 뺏기고.
강은,
내가 라이브로 꼭 들어보고 싶은 적군 노래 세 곡 중에 하나였는데
이제 부를 세 곡은 인생3부작이라고 이름을 붙여봤어요-
하며 강이 첫곡으로 시작되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확 차올랐다
역시 지선이한테 들켜버려서 좀 창피했지만,
그래도 강은, 내게 그렇게 특별한 노래.
그렇게 진지하게 노래를 듣고 있던 중에 바로 앞에 있던
베이스 주자께서 실로폰을 덜덜 떨며 연주하는 바람에
다들 폭소.해서 인생 3부작 첫곡의 장엄하고 진중함은 잠시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ㅋㅋ
듣고싶은 또 다른 두곡은 모두 어디로 간걸까와 미안해.
언제쯤 듣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의 강으로 당분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
적군은 나이를 먹을수록 능청스러워져서
말도 많고 무려 혼자 연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다 객석 반응에 웃어버리기도 했는데
그런 적군이 이끌어가는 공연은
그 공간과 시간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호흡하고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한낱 관객일 뿐인 내가 그저 노래를 듣다 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공연의 일원이 되는, 공연을 완성하는 하나의 부분이 되는 기분.
그래서 행복했다
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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