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땐 자습할 때 이어폰을 빼지 않았고
이적이 진행했던 에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었는데
이젠 라디오를 들으면서 다른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건,
어지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다른 무언가를 하면,
방금 지나간 이야기를 놓치고,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다른 것이 손에 잡히질 않고.
결국 다른 어떤 것이 우선순위가 되면
어지럽게 만드는 라디오를 끄고야 마는.
이건, 노래를 들으면서 다른 것에 집중할 줄 아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노래가 흐르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공부를 한다는 건,
노래를 정말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을 차단시키는 데
노래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래에 귀기울이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라디오는 틀어놓고 듣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것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지난 날, 자습시간에도 매일매일 2시간씩 할애해가며 들었던 라디오를
왜 별거 안하는 지금, 집중해서 듣지 못하고 있을까.
12시-2시였다는 것,
상당기간 중국에 있었다는 것은
내가 드림온을 한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는 것에 대해 정당한 이유가 되어줬다
그래서 이적이 10시부터 12시, 텐텐클럽으로 돌아왔을 때
당연하게도 나는 에플을 듣던 고2 때의 나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외국에 있지도 않고,
10시부터 12시는 라디오를 듣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니까.
하지만, 텐텐을 들은 건 고작 방송 첫 주 몇 번,
그리고 오늘.
누구도 내게 왜 이적을 듣지 않느냐고 물어보진 않지만,
내겐 나를 이해시킬 이유가 필요했다.
쓸데없어 보일지 몰라도,
왜 이적의 라디오마저 나를 붙잡지 못하는지.
그리고 떠오른 건 갇힌 공간에서 듣던 라디오에 대한 향수였다.
갇힌 공간.
그러니까 자습 감독을 하는 선생님의 발소리만 들리던 야자시간이라던가,
슥슥 샤프 소리와 문제집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독서실이라던가,
혹은 혼자 탄 조용한, 그러니까 시끄럽게 무언가를 틀어놓지 않은 버스 안이라던가.
그런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이
라디오를 듣지 않는 이유가 되는 거다.
지금의 나는, 라디오 기능이 없는 아이팟 덕분에
버스 안에서 라디오를 들을 수 없고
집에선 인터넷으로 라디오를 듣다 보면
다른 것에 쉽게 마음이 쓰이고 만다.
라디오에 집중하고 싶은데
집중이 안되어 끄게 되는 것,
잘 모르겠지만 그거다.
그래서 메이비가 방송에서 옥자를 불러도 알지 못하는 날들이 많고,
적군이 원정이한테 오빠를 해주겠다고 하는데도, 뒤늦게 땅을 친다.
그러고보면 예전에도 마음은 어지러워졌었다.
고등학교 때 들었던 라디오는
사실 공부를 하는 척 들었던 라디오였지
공부'도'하면서 라디오'도' 들었던 건 아니었던 거다.
갇힌 공간에서 라디오에 집중했던 그 시간.
이적의 에프엠플러스
유희열의 음악도시
혹은 이소라의 음악도시
가 흐르던 그 때의 그 시간이
문득 그리워졌다.
내가 다시 라디오를 듣는다고 해서,
이적이 10시로 돌아왔고
유희열이 12시로 돌아왔다고 해서
돌아오진 않을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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